Jinhyuk Kim

토끼의 아리아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은 뒤로, 곽재식 작가의 소설은 조금 더 아껴두고 읽고 싶었다. 그만큼 어딘가 친근하고 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놓은 듯했다. 모든 이야기가 나름의 개성을 뽐내고, 그 개성이 조금 밋밋해 보일 수는 있으나 매끄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어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내가 대학 시절 그토록 찾아 해매던 종류의 이야기였지 싶기도 하다.

영화가 전공이 아닌 대학생이 모여 만드는 영화는, 그 무엇보다도 작지만 알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기 드물게 장편영화를 주로 찍었던 영화 동아리는 그들만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전문가들이 촬영한 기성 영화들을 따라하는 행태에 그치기가 쉬웠다. 혹은 너무 쉽게 사랑 얘기 - 특히 짝사랑 얘기 - 에 매몰되기 쉬웠다. 내가 썼던 시놉시스, 시나리오도 저 두 가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는 알았지만,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는 시기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곽재식 작가의 소설처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만큼의 글솜씨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끈기도 없는 나는 그 때 어떤 반짝이는 것을 손에 쥐었더라도 그것을 예쁘게 다듬을 능력은 없었을 것이다. 잘 해봐야 어디선가 날아든 빛을 간신히 반사해내고 있었을까. 그 때 미처 완성시키지 못했던 내 마음 한 구석의 시나리오들을 곽재식 작가의 책을 읽으며 서서히 잊어가고 있다.